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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첫사랑은 절대 잊히지 않고, 사회에서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듯.


     필름을 시작한지 일년 반이 되어가지만 나의 첫 흑백롤은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배 위에서였다. 그날 남은 게 흑백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한, 켄트미어 400. 루앙프라방의 색이 참 얼마나 좋은데 흑백이라니. 괜히 괘씸하게 느껴져 빨리 써버리자고 생각하고 셔터를 가볍게 눌러대었다. 꽤 이상한 처음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단골 사진관에 현상스캔을 맡겼는데 흑백이라는 이유로 하나만 거절당했다. 하지 말라면 하고싶고, 못보면 보고싶은 게 사람 심리 아닌가. 당장 이 매거진 속 사진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걸었다. 언젠가 무너져가는 원도심에서 보았던 흑백사진관으로, 느낌에만 의지해서. 달팽이 사진관이었다.


     "직접 해볼래요?"


     사장님의 웃음섞인 한마디에 뇌에서 많은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엔돌핀과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현상이라니, 인화라니. 꿈꾸고 상상만 하던 일을 이렇게 갑자기.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첫' 현상, '첫' 인화. 어느날 갑자기, 황당하게, 따뜻하게. 


     달팽이 사진관에서 이틀동안의 ‘첫 작업’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현상을 하는 법부터 암실에서 인화하는 법, 사진을 대하는 법과 좋은 사진을 보는 법, 매그넘매그넘, 그리고 오고가는 물음표와 마침표들.


     글쎄, 매번 셔터를 신중하게 눌러야 한다는 관능적 강박, 흔들림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줍은 강인함, 어두움에서 상이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좋다. 세상 같기도 하고, 어쩌면 삶 같기도. 


     반복이 싫다. 어렸을 때 반복이 싫어 피아노를 그만뒀고, 같은 짓을 3년이나 반복해야 하는 학교는 끔찍스러웠다. 다만 이런 반복이라면, 사진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즘 세상 문법으로 꽤 비효율적인 반복이라면, 계속 할 수 있을 듯 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세살 때 생긴 습관이 여든까지 가고,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다음이 계속 엇나가듯. 첫 현상, 첫 인화는 그런 점에서,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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