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Content

    티스토리 뷰

    혼자, 라오스; 여유, 낭만, 느림의 미학에 대하여

    2017.02.14~2017.02.22
    Laos Alone!
    Vientiane, Vang Vieng, Luang Prabang

    China
    Kunming, Qingtao

    하늘의 별을 한참 올려다본 적이 있나요. 야근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불빛이 아주 근사한 한국에서 온전히 별을 보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밤에도 하늘은 밝고 항상 늦게까지 무언가를 해야 하니까요. 방비엥에서 슬리핑버스를 타고 루앙프라방에 가던 밤. 산길을 달리는 버스가 덜컹이는 소리만 공기를 울리고, 사방이 어둡던 그 때의 하늘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자리에 박혀 총총 빛나던 별들, 너무나 선명한 별자리를 만들어 하늘을 수놓던 그 별들 말입니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아름다워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에 제 여행의 목적은 모두 달성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속 김사부처럼, 낭만에 대하여 노래하는 최백호 선생님처럼, 낭만을 찾고자 떠난 여행이었으니까요. 바쁨과 삭막함이 당연한 도시를 떠나 항상 동경하던 느림의 미학과 여행의 낭만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재수한다는 저에게 온갖 사람들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소리로부터 벗어나길 원했고요. 펜과 노트, 필름 카메라와 40만원을 챙겨 도착한 라오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적은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면서, 느리고 맑은 곳. 자전거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마음껏 먼지를 마실 수 있고, 영어는 못해도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요. 늦잠이 잘못이 되지 않는 곳, 그 누구도 나의 미래를 함부로 논하지 않는 곳이요. 그런 라오스에서의 모든 순간은 눈부시게 낭만적이었습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는 새벽마다 숙소를 구하기 위해 짐을 들고 거리를 헤맸고, 길을 잘못 들었으나 현지인들이 영어를 못해 두 시간 반을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뷔페 골목을 찾지 못해 매일밤 야시장을 한 시간씩 걸었는데 알고보니 숙소 바로 앞이기도 했고요. 한국에서 시간에 쫓기던 버릇 때문에 슬리핑 버스 픽업이 늦어지자 초조해 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빌리던 날은 너무 큰 화폐 단위에 혼란스러워 20000낍이 아니라 200000낍(한화 28000원)을 내버렸고요. 덕분에 차를 탔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을 느리게 음미할 수 있었고, 야시장 구석구석을 걸으며 라오스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픽업이 안와서 중국인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돈을 잘못 내고선 돈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지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지만, 그곳이 라오스여서, 계획없이 떠나온 여행이라서 웃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가서 외롭거나 무섭지 않았냐고 묻지만, 제 대답은 ‘전혀’ 입니다. 혼자라는 두려움보다 사람들이 저를 마음대로 생각하고 뱉는 말들이 더 무서웠고, 혼자 출발했지만 항상 혼자가 아니었으니까요. 낯을 (특히 동갑에게) 꽤 가리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아 오래 알던 친구처럼 서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내 나라와 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단지 그 순간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방비엥에서 액티비티를 하거나 숙소를 고를 때에도 한국인이 많은 곳은 피했고, 많은 외국인과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한국어가 어색해질 만큼 말이죠! 이쯤에서 그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야시장 어떻게 가냐는 말에 한숨 한 번 푹 쉬고 오토바이로 데려다주신 비엔티안 식당 아주머니, 방비엥에서 하루를 함께한 Sandra와 독일인 남자친구, Natasha, พินิจ แก้วเกาะสะบ้า과 그의 가족들, 혼자 온 학생이라는 말에 엄청난 저녁을 사주신 선일여자중학교 명퇴하신 체육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두시간 반이나 도로를 달려 먼지 투성이인 저를 시내까지 데려다주신 한국인 가이드 아저씨, 버스 예약하는 곳의 직원과 오토바이에 저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해줬던 일곱살 꼬마, 공항에서 알 수 없는 과일을 입에 넣어주셨던 이귀형선생님, 바나나 한 봉지 가득 주고 떠나신 윤영오선생님. 루앙프라방 가는 슬리핑 버스 옆자리에 누웠던 명지대 오빠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맥주를 사준 Jong won과 Li Note, Phanh Tha Sone 사장님과 아내, 같은 도미토리에서 지내며 맥주와 보드카를 함께한 YS, 아일랜드인 교수님, 만오천낍 뷔페에서의 Fung과 일본인 친구, 꽝시폭포에서 함께한 대구 언니 두명과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힌디어와 프랑스어, 영어를 하던 벨기에인 친구(페이스북 친구하기로 했는데 이름이 기억 안나요… 찾고 싶어요…), 푸시산에서 함께 일몰을 보았던 메바이와 홍미, 라오스에서 자원봉사하는 한국인 선생님과 에디. 운남성에서 휴대폰 충전을 하지 못해 애먹던 저에게 선뜻 보조 배터리를 건네주고 간 중국인 언니와 추계예대 미술과를 졸업하신 꽃보다 할아버지들! 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에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퍽 괜찮은 곳임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던 시간이 많아 관계를 남다르게 소중히 여기는 저인데, 그게 얼마나 괜찮은 일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작은 나라에서 온, 어쩌면 조금 이상한 아이를 과분한 포근함으로 대해주어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지만 다음 여행에서, 혹은 그 훗날에, 라오스에서처럼 우연히 만나 서로 반가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필름의 안전을 위해서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수검사를 요청하고 조금은 이상한 눈빛을 받아야 했습니다. 지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렇게 들고간 필름 카메라와 열 세 롤의 필름이 제가 본 것, 느낀 것을 기대 이상으로 잘 담아주어 뿌듯합니다. 혹자는 왜 미련하게 필름을 쓰냐고 하지만, 저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고 필름을 넣고 감을 때 비소로 사진을 찍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필름으로 찍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질감과 모든 사진을 신중하게 찍어야 하는 관능적 강박이 좋습니다. 한국의 빌딩숲과 다르게 어디에 눈을 두어도 그림같이 아름답고 고요해서, 강한 햇빛 마저 사랑스러워서 그런 것들을 주로 담고 싶었습니다.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과, 선진국의 관점에서 가난하게 여겨져도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을 찍고자 했습니다.

    루앙프라방에서 새벽이 되면 하는 탁발식을 찍고 싶었습니다. 가진 자들이 나누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덜 가진 이들이 나누어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풍경이 저에게 매우 강렬히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동안 매일 탁발을 보러 갔고, 직접 하기도 했지만 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인 단체 패키지 관광객들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 들떠 있었고, 가이드는 시끄럽게 탁발식을 설명했습니다. 사진찍는 사람도 꽤 많았는데 어두운 새벽이다보니 외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모두 플래시를 사용했고요. 아주 경악스러웠습니다. 다른 이의 신성한 의식을 어떻게 일개 관광 상품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부끄러웠습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께, 여행에 갔을 때 최소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발등에 가득 생긴 물집과 까맣게 그을린 살갗마저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혼자 훌쩍 떠난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부족하지만, 더 크고 단단해지기 위한 양분을 마련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언제나 여유와 낭만과 느림을 사랑하면서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 어떻게 할 거냐는 말에 흔들린 적도 있습니다만, 라오스에서 저의 신념이 거의 괜찮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와 계획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글이든, 영화든, 혹은 수능 공부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제가 선택한 것을 후회없이 하고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겨 의미있게 보내는 사람, 모든 순간으로부터 배움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위해서요. 저에게는 그것이 너무도 중요하니까요. 남들보다 느린 것은, 느린 것일 뿐, 괜찮습니다.

    Nikon FM2
    Fuji 200, Kodak proimage 100
    모든 사진은 무보정입니다

    Copyright 2017. Ga Chaewon
    all pictures cao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신고

    0 Commen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