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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1글] 꽃다발을 건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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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바쁜데 졸업식 와줘서 고마워.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내가, 아빠 엄마랑 엇갈려 버려서 보자마자 짜증 냈는데도 말없이 꽃다발 건네줘서 고마워. 고등학교를 떠나는 것에 전혀 감정 없는 나인데 아빠가 무뚝뚝하게 건넨 그 꽃이 너무 예뻐서, 나한테 꼭 수고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날 뻔 했어. 학교 다니면서 생각보다 힘들었나봐 나. 힘들면, 힘들게 하는 일을 그만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스스로 가시를 세우고 일탈을 일상으로 만들었었나봐. 그게 나만의 방어기제였던 거야. 해봤자 학교 대신 영화관, 학교 대신 잠, 학교 대신 책, 학교 대신 여행이었지만 말이야. 

     아빠도 친구들, 가족들 만나면 우리 딸은 학교 생활을 너무 잘한다고. 선생님들한테 너무 예쁨받았고 대학도 잘 갔다고 말하고 싶을 텐데 그런 딸이 아니라서 미안해. 그런데 나, 나는 고등학교가 너무 싫었어. 교문 앞에서부터 숨이 막히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교실에 있으면 머릿속에는 온통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벗어나지 못한다면 불이라도 지르고, 폭파라도 시키고 싶었고. 

     알아. 이런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생경하게 나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내 글을 읽으며 생각할 수도 있어. '공부를 못하니까 저런 소리를 하지.' '저 정도면 정신병 아니야?' '고작 3년인데 그것도 못 견디나.' 또 혹자는 이야기 할거야. 고통의 시간들은 모두 배움이라고, 나중엔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일 텐데 어리석다고. 어쩌면 아빠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입으로 꺼내기엔 당신 딸이 너무 마음 아파서, 이해할 수가 없어서 속으로 앓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해. 그래서 조금은 미안해,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있잖아 아빠,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고 나를 어떻게 보든, 나는 영원히 그 시간들이 나에게 배움이 아닐 것임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일 것임을 알아. 생각만 해도 숨 막히고 괴로운 시간으로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걸 알아. 다만 오랜 뒤에,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고 나서 조금은 담담하게 "나 그 때 학교 정말 싫어했어." 하고 이야기하며 미소지어 보일 수는 있을 것 같아. 기억은 휘발성이 강해서, 감정을 점점 무디게 만드니까. 아무튼 그만큼 나에게 학교는 고통이었어. 아픔이고 화고 경멸이었다고.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바로 내가 공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야. 나는 공부가 좋아, 아빠.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무언가를 풀고 이해하는 게 좋아. 아마 중학교 때 나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은 알고 계실 걸. 내가 가진 앎의 욕구가 꽤 크다는 걸 말이야. 나에게 배움은 삶의 필수 영양분이자 부작용 없는 마약이고 부루마블에서 가장 비싼 도시야. 꼭 점령하고 싶은 그런. 그런데 왜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방탕하게 한량처럼 살았냐고. 왜냐하면 강요당했기 때문이야. 갇히길 강요 당하고 외우길 강요 당했어.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어. 

     다섯 살 때 엄마가 사온 자동차에 관한 입체책을 본 뒤로 내가 무언가 생각을 할 때면 머릿속에서 엔진이 피스톤질을 하고 톱니바퀴가 돌아간다고 느꼈어. 그러면 그 생각이 굴러가서, 어느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거지. 그렇게 내 뇌가 작동하면 나는 뿌듯했고 희열을 느꼈어. 중학교 3학년까지 그건 너무 당연했어. 뇌에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는 것, 바퀴를 굴려서 녹슬지 않게 하는 것. 

     고등학교를 전교 11등으로 입학하고 모든 선생님들이 기대하는 학생이라 나름 주목받으며 기숙사에 입사했지. 방 언니들이랑 이름도 트기 전에 창문도 없는 지하 자습실에서, 비좁은 칸막이 책상에 갇혀서 공부를 해야했어. 개학 전이니까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점호를 하고 아홉시부터 밤 열두시 반까지. 열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고작 20분씩 네댓번 쉬어가면서 계속 칸막이 앞에 있어야 하는거야. 처음 얼마 간은 어거지로 견뎠어.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폐해졌어. 엔진이 녹슬고 톱니바퀴에는 거미줄이 생겼어. 왜냐고? 학교에서 배우는, 말 그대로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면 못 하게 했으니까. 그림을 그리거나 뉴스 기사를 보는 것도 안된다고 했어. 그래서 영화를 보는 건 꿈도 못 꾸었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었어. 배달음식을 시키면 벌점을 받았고 매점에 가기도 어려웠고. 내가 어느날 갑자기 외출을 내고 집에 와서 펑펑 울며 자퇴하고 싶다고 다 말했으니 아빠도 잘 알고 있잖아. 

     특히 평일에 학교에서 하는 야자는 아주 최악이었어. 그날 할 공부를 다 하고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책을 뺐으면서 정신을 못차리냐고 나를 나무랐으니까. 그 뒤로 다른 건 꿈도 못 꿨어. 다른 애들한테 방해된다고 화장실도 갈 수 없었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집에 가기도 어려웠고. 배우는 내용도 처음에 기초를 닦을 때는 새로운 것들이라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순간 선생님들은 미친듯이 진도만 나가고 있었고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이해보단 외우는 걸 강요했어. 그렇게 나는 점점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간 거야. 아침부터 밤까지 주어진 분량을 외우고 칸막이에 갇혀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그런 스스로가 정말 끔찍했어. 기본 권리를 빼앗긴 채 공부를 해서 서로를 이겨야겠다는 마음을 잔뜩 가지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학교라는 공간이 소름끼쳤어. '학생다움'이라는 핑계로 개성을 짓밟고 모두 같을 것을 강요하는 그곳에 불을 지르고 싶었어. 

     더 무서운 건 사람이었어. 몇몇 선생님들은 공부 잘 하는 애들과 성적이 조금 안나오는 애들을 대할 때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고 (성적이 안나오는 아이들이 불성실한 것도 아니었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역적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윽박질렀고. 몇몇 애들은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 이익을 우선시하기도 했어. 너랑 친구하면 나한테 이득이니까. 이런 얘기가 너무 당연히 오고 갔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게 대다수였던 거야. 몇몇 애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말도 잘했고 눈치 빠르고 처세술에 조금 더 뛰어났던 나는 그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였어. 필요하면 잡고 있고,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그런 거. 앞에서는 살살 웃으면서 뒤에서는 헐뜯고 비난하는 건 부지기수였고. 하나하나 나와 맺어지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내가 관계를 맺는 게 무서워졌어. 애들은 오히려 나한테 다가왔는데, 그게 너무 무서워서 내 앞에 선을 그어놓고 애들을 넘어오지 못하게 했어.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모두와 두루두루 친했지만, 자신있게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애는 거의 없어. 걷돌았으니 당연히 인원이 홀수인 반에서 혼자 남는 한 명은 나였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수능이랑 업무에 치여서 학생을 대하는 게 중학교와 달리 너무 사무적이었고, 표정 사이사이 차가움이 보여서 내가 점점 피했어. 그러니까 학교는, 말하자면, 웃고있는 가면의 세상이었던 거야. 

     아빠, 제일 무서운 건 전통이야. 어떤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과 똑같아 지는 걸 본 적이 있어? 모든 동아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어. 전통에 따라서 선배를 선배님이라고 하고, 혼날 때는 무릎 사이를 붙이고 넥타이에 턱을 붙인채로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듣든 간에 '죄송합니다'로 답하고, 밥 먹을 때 선배가 지나가면 일어나서 90도 인사를, 멀리 있으면 달려가서 인사를, 생일 때마다 돈을 걷어 선물을 사고 수능 100일 전, 50일 전에는 직접 만든 음식과 초콜릿을 준비하고. 그렇게 1년을 당하며 우리가 선배가 되면 바꾸자, 더 이상 인습을 물려주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을에서 갑이 되면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야. 다짐했던 때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결국 자기들도 후배에게 똑같이 받아야겠다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나왔어. 아빠, 누군가는 나에게 끝까지 붙어있지 않고 포기했으니 너가 이상한 거라며 손가락질 하겠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어. 나는 사람들이 변하는 게,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게 너무나 무서웠어. 정말 무서워. 그건 마치 어떤, 폭력, 인거야. 정이현 작가의 소설 제목에서처럼, 상냥한 폭력인 거지. 전통을 가장한 폭력적인 위계가 나를 병들게 했어. 그래서 동아리를 나오기 전까지 1년내내 아프고 아팠어. 매일밤 숨죽여 울었어. 

     그래서 모든 순간 학교가 싫었어. 뒷동산에 벚꽃이 피어서 학교가 분홍빛으로 물들고 새들이 지저귀어도, 그곳은 항상 살얼음판이었고 칼바람이 불었어. 그런 곳에서 계속 있으면서 그곳이 바라는 것에 충실하기 싫었어. 그곳에 속해있는 순간순간이 끔찍하고 두려웠어. 그런 두려움이 나를 밖으로 향하게, 끊임없이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있게 만든 거야. 아빠,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나는 학교가 너무 무서워서 졸업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느낀 두려움을 인물로 만들어 글을 쓰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죽였어.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더 이상 겁 먹지 않으려고. 그 차가운 것들을 떨치기 위해서 어떤 때에는 내가 더 차가워져야 했던 거야. 아빠가 언젠가 나에게 물었지. 왜 그렇게 글에서 사람을 죽이냐고. 그 때부터 나도 모르게 굳어진 습관이야. 나는 그래. 내 안의 두려움과 혐오, 세상의 부조리와 회의를 글로써 죽여. 나는 그것들이 궁금하고, 무서워서 글을 써. 그게 가끔은 가족일 때도, 나 자신일 때도 있고. 

     방학하기 전까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무단을 찍어서라도 나는 아무 오랜 기간 꾸준히 학교에 가지 않거나 얼굴만 비추고 나와버렸어. 그런 나를 보면서 아빠는 한숨을 쉬었을 거고, 이해하지 못했을 걸 알아. 하지만 나, 그렇게라도 해서 매일밤 울지 않게 되었어. 물론 가끔씩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울음은 주체할 수 없었지만, 전보다 훨씬 나아진 거야. 이제 고등학교에 갈 일이 없으니 점점 더 나아지겠지. 아빠, 언젠가 아빠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래서 나를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어제처럼 말없이 꽃다발을 건네주세요. 수고했다고, 항상 곁에 아빠가 있고 고등학교라는 족쇄가 사라졌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빠, 하지만 밖으로 나돌면서, 혼자 여행하고 밥을 먹고 사진 찍고 영화 보고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그 때 나의 뇌가, 나라는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느꼈어. 그렇기에 지금까지 무사히, 다른 사람 눈에는 나름 무던하게 그 시간을 지난올 수 있었던 것 같아. 가끔 비아냥거리고 고지식해서 내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아빠지만, 내가 고민하고 유랑하면서 스스로를 찾는 시간을 어쩌면 인내하며, 혹은 외면하며 기다려줘서 고마워. 그 삭막한 학교를 무서워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키워줘서 고마워. 관계의 소중함을 알게 길러줘서 고마워. 가끔은 말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침묵이 고마워. 덕분에 칼바람 부는 학교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스치고, 다섯번쯤 되는 악연을 이겨내고,  다섯쯤 되는 소중한 인연을 맺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어. 몇몇 순간은 그 끔찍한 곳에서 웃었고, 따뜻함을 느낄 수도 있었어. 

     아빠, 더스틴 호프만이 나오는 영화 <졸업>이 생각나. 대학을 졸업한 벤자민의 불안과 미래와 욕망을 그린 그 영화 말이야. 나도 비슷한 곳에 서 있는 것 같아. 하고 싶은 게 많지만 미숙해서 한 편으론 불안하고, 하지만 미래는 밝을 거라고 모두 이야기 하니까. 아빠, 나는 벤자민처럼 위태롭게, 또는 어딘가에 부딪치고 아파하면서 더 단단해질거고, 그 미숙의 시간들을 지나며 점점 더 견고해질거야. 조금은 가시가 돋혀있지만 언젠가 조용히 꽃을 피워낼 거야. 내가 너무 많이 아파서 넓어지는 것을 포기하고 시들어 버리려고 할 때면, 그냥 말없이 꽃다발을 건네주세요. 아픔의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라고,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그러면 나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 꽃잎을 일궈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빠가 건넨 꽃이 너무 예쁘니까, 아빠의 무뚝뚝한 행동이 좋으니까. 


     아빠, 꽃다발을 건네주세요. 말없이, 너무 예쁜,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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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Comments

    • 페니레인 Penny_Lane 2017.02.09 21:33 신고 Modify/Delete | Reply

      제시어는 '졸업'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졸업했으니까! 다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졸업 축하한다고, 학교가 너무 그리울 거라고 하는데 나는 조금 달라서, 그 '다름'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보고 싶었다. 아빠가 일부러 꽃집까지 들려서 엄마랑 꽃다발을 사왔는데, 사온 꽃다발이 너무 예뻤기에, 청자는 아빠.
      고등학교, 추억으로 미화되지만 참 무섭고 무서운 곳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 페니레인 Penny_Lane 2017.02.09 21:43 신고 Modify/Delete | Reply

      *업로드가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졸업 시즌이라서 약속 폭탄을 맞아버렸어요… 그리고 여행계획을 세우느라… 하지만 다 핑계겠죠? 분발하겠습니다😂


    • 썬앤썬 2017.02.09 21:57 신고 Modify/Delete | Reply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어요. 그러면서도 희망도 보이고 젊은 분이라 부럽기도 하고....


      페니레인 Penny_Lane 2017.02.10 22:58 신고 Modify/Delete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7.02.09 22:03 Modify/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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